지구를 특별한 행성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 때문이지만 사실 인류가 살고 있기에 더욱 특별 해진다. 인류는 역사시대 이전부터 도구를 사용하며, 집단을 이루는 사회를 형성해 왔고, 이를 통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정점에 군림해 왔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인간이 만들어온 과학 기술의 발전은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존보다는 파괴를 일삼으며 인간의 가치를 중 심에 놓고 그 편의를 위해 지구를 사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세상은 변하려 한다. 인류는 더 이상 다른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도 지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한정된 지구라는 공간에서 공존하기 위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이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주지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의 설정을 구상하다. 만약에 지구에 인간이 없다면 어떤 모습일까 에 대한 상상이다. 이는 태초부터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시점에 사라져버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는 이러한 이야기를 펼치기 위한 첫 작업으로 그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커다란 화면은 크게 하늘과 땅으로 균일하게 나누어져 있다 하늘은 해 질 녘에 노을과 함 께 검은 구름이 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공장과 대관람차와 같이 인간의 편리와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장치는 을씨년스럽게 멈추어져 있다. 그 밑으로 자연 의 풍경 속에는 전신주와 길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들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이를 제외한 나무와 땅은 하늘빛을 고스란히 반사하거나 그늘 속에 감추어져 있다. 이렇게 인간은 없지만, 여전히 인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이러한 작가가 만드는 새로운 현실에서 인간의 존 재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인 우리가 사라진다 한들 세상을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흔적 만 남은 공간은 더 이상 인류의 공간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다른 것들이 곧바로 채워낼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인간을 다른 존재들과 다르지 않은 특별한 존재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를 시작으로 주지수는 여러 식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도래 하지 않을 가상의 시공간의 존재하는 것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 그리는 어떠한 상상도 현실에 근거한 형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 없는 세상을 그리는 일은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이 가진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는 일이 될 것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인간이 등장하지 않지 만, 인간의 인식 그 자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 황을 바탕으로 작가는 어떠한 새로운 것들을 상상하고 이를 다시 작품으로 담아낼지 기대해 본다.